[알피하논] 파란 하늘의 블루스
*알피노가 하논을 처음 만났을때 ~ 그 이후까지.
알피노 X 빛의전사
소꿉친구 설정의 이야기 입니다.
bgm : (추천)
불편한 아침이 또 한 번 밝아왔다.
요즘의 아침이 달갑지 않다. ‘평화’가 지루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똑같은 하루. 친절한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가족’ 들. 남들이 그렇게 갈구하는 평화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이 조그마한 마을.
지루해. 예전에는 그렇게도 원했던 평화가, 익숙함을 넘어선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분명 익숙함 이란 그런 것이겠지. 익숙한 인간관계도 언젠간 지루함으로 다가올 것이고, 익숙한 생활도 언젠간 지루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구하게 되어있다.
하논은 잠시 끄응, 기지개를 피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빛, 용이 그려진 시계를 바라본다. 움직이지 않는 시침. .. 고장이 난 건가, 이거. 분명 아까도 10시였던 것 같은데.
“하논, 아까부터 촌장님이 심부름 좀 다녀오라고 연락하던데, 아직 출발도 안 했어?”
“….엣.”
아앗, 아! 분명 아침을 먹으면서, 촌장님이, 그러니까.. 샬레이안 대학의 교수님께 이 시계를 가져다주라고 했었나.
에엣, 고장난 시계를 왜 가져다줘 , 샬레이안에 실력 좋은 수리공이라도 있는건지 ! 아니, 그러니까, 불평할 게 아니라. 고장난 시계만을 바라보니 시간을 깜빡 잊어버렸다. 급히 고장 나지 않은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점심을 훌쩍 넘어버린 시간인데. 이미 완전히 늦은 것 같아. 어떻게 해! , 하논이 당황하며 급히 금빛 시계를 제 가방 안으로 넣자, 젊은 아우라족의 청년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원래 약속 시간은 두 시였어. 네가 또 잊어버리고, 늑장 부릴까 봐 촌장님이 여유롭게 잡았대”
“고, 고마워 롯치, 그러니까, 나, 빨리 달려갈게에..! 촌장님께 지금 당장 간다고, 전해줘!”
하논은 급히 가방을 부랴부랴, 맨 채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그래, 맞아. 지루할 틈이 어디 있겠나. 일상의 사소한 작은 일들이, 하논 자신의 ‘여유’를 망치고 있는데! ,그래도, 촌장님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으니까….. 대충 두어 번 자신의 머리를 매만진 채 걸음을 나서는 하논이, 오늘도 눈치 없이, 자신을 향해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평화’는 이미 완성되었다. 평화에서 나오는 작은 일들로 오늘도 밖을 나선다. 나에게, 모험을 떠나라거나, 자극적인 삶을 살라는 거. 역시 무리겠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조사하는 샬레이안. 샬레이안 속 연구원들. 자신과 마냥 먼 것 같은 그 이야기 속으로, 하논은 걸음을 떼었다.
*
수많은 책 냄새와, 간간이 맡아오는 커피 향. 분명 에오르제아의 언어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연구원들의 전공적인 용어.
여기가 대학교 인가, 샬레이안 대학은 겉으로 몇 번 지나쳐 보기는 했지만. 안까지 들어와 구경하기는 처음이였다. 여기에 그러니까 .. 샬레이안의 의원들이 있고, 세계를 구하는 데 힘 쓰는 사람들이 있는거지. 그런 사람들이 왜 고작 이런 골동품 시계를 고치는 일에 집중하는지, 하논은 잠시 입술을 내밀고 불평을 토로하다, 자신의 가방 속에 만져지는 작은 종잇조각을 꺼낸다. 그러니까 .. 강의실, 이쪽 강의실로 가라고 했던 걸로 기억나는데.
찾았다. 올바른 강의실을 발견한 순간 하논의 꼬리가 잠시 둥실, 하고 움직인다. 교수님을 만나라고 하는 걸까? 아니면 연구원일까? 자신이 누구를 만나는 것일까 하는 기대감에 뺨이 살짝 붉어진다. 멋있는 엘레젠들이 가득한데, 분명 멋진 엘레젠 분이겠지? 휴런이여도 좋고. 루가딘 종족도 멋있어! …. 분명 샬레이안에 도착하기 전 까지 불만만 가득했지만, 이젠 기대감으로 절로 제 꼬리가 가볍게 움직여졌다. 하논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어 문을 연다. 그러니까. 이 너머엔 …
“……우잇.”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강의실을 하논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 왜! 분명 여기로 오면 있을거랬는데. 자신이 시간도 맞춰 일부러 달려왔건만. 오히려 너무 빨리 와서 없는 걸까?. 어찌나 자신의 운명은 이리도 애석한지. 하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기왕 온 김에 구경이라도 해볼까. 만져지는 책상의 감촉이, 또 칠판의 감촉. 칠판에 적혀있는 여러 가지 술식들이 싫지만은 않다.
으음, 그러니까. 예전에 고대 알라그 술식에 관해, 혼자 조금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에테르를 변환해서 소환수를 만드는 걸까. 확실히, 이런 동물형 소환수는 귀엽고. 외롭거나 지루할 때 카벙클을 소환해 꺼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지도. 하핫, 소환사의 소울 크리스탈도 없는데 무리일까 -
그다음에 적혀있는 술식은, 피닉스와 바하무트의 소환 술식. 피닉스 부분은 뜯겨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고대 소환수 피닉스라니. 마냥 허구속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부담이 엄청날 텐데. 피닉스도 그렇고 …. 바하무트.
하논은 잠시 바하무트가 적혀있는 란에서 멈칫한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그, 제 7 재해의 고스란한 피해자였던 자신. 제 7대해때 바하무트의 만행에, 죄책감을 느낀 한 용족이 자신을 근처 마을로 안내해. 가족중에 유일한 하논만이 살아남았지만, 그걸로 그에 대한 분노, 증오가 씻겨 내려져 가는 것은 아녔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운 건가.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며, 그렇게나 증오하던 인간 마을로 자신을 데려다 준 그 어린 용. 그 이후로도 간간히 찾아와 자신을 보살펴 준 용님. 너는, 내가 야만신 바하무트의 에테르를. 다시 소환해서 그 힘을 쓸 수 있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용님.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논은 급히 제 몸을 교탁 밑으로 숨겼다. 숨으려고 한 건 아닌데, 혹여나 교실에 적혀있던 술식을 멋대로 읽어보고, 분석한 자신의 행동이 수상해 보일까 봐. 하논은 급히 몸을 숨기곤, 숨을 흐읍. 들이쉬었다. 자신의 약속 상대가 도착한 걸까? 빨리 시계를 건네주고 도망치고 싶은데… 하논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인기척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니까 .. 저 사람이, 교수 … 일 것 같진 않은데.
“…?”
긴 속눈썹에, 올곧은 자세로 자리에 앉은 작은 엘레젠 족의 소년.
하논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처음 보는 동갑내기, 처음 보는 엘레젠 족의 소년. 종족 휴런 종족이나, 용족은 많이 봤었지만, 마을 밖으로 영 나가지 않는 하논에겐, 처음 보는 엘레젠 족의 소년이었다. 그, 그러니까. 공부하러 온건가? 수상해 보이면 어쩌지 …. , 졸지에 더 수상해 보이겠어. 교탁 밑에 있던 하논이 차마 나가는 타이밍을 놓쳐 안절부절 하고 있을까, 엘레젠 족의 소년은 잠시 무엇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하논의 귀에 들리더라. 휴우, 간건가. 괜히 제가 소심해 숨어버려서, 도둑처럼 보이면 곤란하니까 …. 하논이 잠시 제 가슴을 쓸어내리고,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이내.
“자네, 마법대학 학생도 아닌 것 같은데, 자네는 누군가?”
그 엘레젠 소년이, 하논의 시야 위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으,으,잘못했어요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깜짝 놀란 하논이 금세 뒤로 튀어 나가, 그 어린 소년에게 사과했을까. 그 어린 소년은 - 꿈뻑, 하논을 향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 이내 씩 웃어 보였다.
“나는 알피노 르베유르라고 하네.”
하논에게서는, 처음 만나보는, 또래의 ‘친구’였다.
나, 나는 하논. - 하논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었다. 어떻게 여기를 들어오게 됐느냐는 알피노의 질문에, 제 가방을 급히 뒤척이다, 이내 그에게 고장난 시계를 보여주었다. 알피노는 잠시 빤히, 그 시계를 바라보다가. 아마, 심부름을 성공한 것 같네. 하고 두어번 웃더라. 그게, 무슨소리야? 교수님은 .. 어디있어?
“아, 아닐세. 웃어서 미안하네. 촌장님께 이름을 못들었구나 .. 그 시계는 나에게 가져다주는걸세.”
“교수님이 아니라 너, 아니 알피노 - …. 에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래 봬도 에테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말일세.
모르는 말 투성이이다. 그야, 재해로 가족이 몰살당하고, 용의 등에 업혀 작은 마을로 도망쳐, 그 이후론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가끔 그 용을 만나, 이것저것, 용의 언어와 고대 지식에 대해 배우는 거 말고는 …. 하논은 에테르나, 기초 마법학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고대 지식이여 봤자 실생활에 응용할 수 없고, 고대 마법이여 봤자 기초 마법 없이 실행될 리 없어서 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논은 - 자신이 마법이나, 에테르학에 관해 재능이 없는 줄 알고. ‘용님’ 에게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안한지 오래됐는데. 에테르라니, 그럼 넌 기초 에테르 응용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거야? -
“물론이지 하논, 기초는 이미 졸업한지 오랠세. 실용과, 실용을 넘어서 연구까지 하고 있지”
알피노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저를 열심히 쳐다보는 하논을 응시하곤, ‘하논 자네도, 관심이 아예 없는건 아닌것처럼 보이는군’ 이라며 피식 웃었다. 아, 아니야! 나는 마법에 재능도 없고 … 하논이 말 끝을 흐리며 바닥을 툭,툭 쳤을까. 이내 알피노는 제 손을 하논의 손 위에 얹어 시계를 감싸 쥐더니, 눈을 감아 제 에테르를 시계로 주입했다. - ‘따듯한 느낌이다.’ 라고, 하논은 생각했다.
“이건 그냥 시계가 아니야. 이렇게 에테르를 주입하면, 시계가 움직일걸세. 자 보게.”
정말이다,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움직인 거야? - 라고 하논이 눈을 다시 반짝이자, 작은 토끼를 보는 것 같다고 - 알피노는 순간 생각하다, 이내 다시 웃음지었다. 다시 한 번, 하논의 손을 감싸쥐고 시계에 더 많은 에테르를 넣자, 시계는 빛을 내더니, 이내 알피노가 손을 내리자, - 하논의 손 위에서 둥실, 둥실 뜨기 시작했더라. 완전, 완전 신기하다! - 하논이 알피노를 마치, 역사속 인물 마냥 대단하게 바라보자. 알피노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도리질 쳤다.
“별거 아니야. 하논도 배운다면 분명 할 수 있는, 간단한 에테르 응용 술이라네”
“정말, 나도, 나도 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자네는 할 수 있어. 관심만 있다면 종종 샬레이안 대학에 놀러오지 않겠나?”
응! - 너무 너무 좋아. 하논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럼 , 앞으로 자주 찾아와주는 거라네. 나도 또래 친구는 내 여동생 말고 처음 보는 거라서 말이야. - 라고 알피노는 그녀에게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약속하자는 의미 맞지? 하루도 빠짐없이 올게, 알피! - 하논은, 그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어 환히 웃었다.
“그럼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닐세, 어서 에테르의 기본 마법인. 에테르 방어막을 만드는 법부터 배우게나.”
“벌, 벌써 시작이야? ..공부에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해볼게, 알피! ”
그것이 - 우리의, 알피노와 하논의 첫 만남이었다.
*
“알피! 어때 , 나 드디어 해냈어! ”
“하논, 해냈어!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다네! ”
드디어 카벙클 소환에 성공했어! 이게 다 알피 덕분이야! -
하논은 작은 카벙클을 껴안으며 알피노를 향해 싱글벙글 웃었다. - 드디어, 드디어! 에테르 학도 다 배우고, 알피노가 알려준 것도 응용해 카벙클 소환에 성공했다!, 소환사의 소울 크리스탈도 촌장님께 졸라, 림사 로민사까지 알피노와 함께 가며 - 비술사 길드에서 힘겹게 얻었지만, 소환술이 워낙 어렵고 복잡해 포기하기 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소환된 작은 카벙클을 힘껏 껴안다가, 이내 뿅 - 사라진 카벙클에 하논이 잠시 당황했을까. 알피노는 그것을 보고 잠시 풉, 하고 웃음을 내뱉다가 하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은 소환술이 서툴러서 그러네. 점점 오랜 시간 동안 소환할 수 있을거야.”
“…웃, 좋아 알피.”
하논이 점점 소환술에 익숙해 지면, 야만신의 에테르를 이용해 소환하는 방법도 있고 말일세. - 알피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논에게 두꺼운 소환술 책을 보여주었다. 1부터 100까지 함께하는 소환술 역사. 라니 , 너무 두꺼운거 아니야? - 하논이 두꺼운 책을 들어 알피노를 바라보았을까. 나는 진작에 떼었다네. 라며 알피노가 의기양양하게 하논에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우우. 야만신이 정말 많네에? 이프리트, 가루다, 타이탄 .. 모두 들어봤어. 그리고 …
“…바하무트..”
“바하무트는 위험한 야만신이야. 혹시라도 무리하게 빙의할 생각은 하지 말게. 혹시나 정말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생긴 게 아니라면 말야.”
그러고보니, 우리 둘 다 바하무트에게 가족을 잃었구나.
하논은 잠시 멈칫,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추다 이내 책을 덮었다. 야만신 바하무트. - 자신의 가족, 친적을 모두 몰살한 그 야만신. 자신을 인근 마을로 피신시킨 그 ‘용님’도 , 그때 마을에서 홀로 울고 있던 자신이 안쓰러워 도와준 것이겠지. 자신을 피신시키면서 지은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바하무트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똑 같은 표정을 지어서. 차마 바하무트에 관해서 여쭈어 볼 수도 없었다. - 진실이 무엇일까. 어째서 바하무트는 자신의 가족을 몰살시켰을까. 왜 , 그 용님이 괴로운 표정을 짓게 하였을까. 대체 어째서 … -
“하논, 하논! 괜찮아? 표정이 안좋아.”
“… 앗! 미안해 알피, 응. 응 나는 괜, 괜찮아.”
책을 너무 강하기 쥐었는지, 손이 빨갛게 부어버렸다. 식은땀을 두어번 흘린 하논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 이내 알피노에게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인사했다. 미안해, 알피. 나 .. 빨리 가볼게. 급한 일이 생겨서 말야. 하논은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언뜻, 알피노가 마주한 하논의 표정이, 그닥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
그 이후로부터 하논의 연락이 없었다.
혼자 쓰는 마법대학의 강의실이 어색했다. 원래 수업이 없는 시간에, - 홀로 강의실에서 연구할 시간에, 하논을 불러 같이 마법공부를 하던 자신이었지만. 이제 하논이 없다. 공부를 끝나고, 맛없는 샬레이안 음식이라며 불평을 하던 하논도 볼 수 없었다.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알피 정말 고맙다고. 자신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던, 하논도 볼 수 없었다.
그저 하논이 없었다. 네가 없으니, 하루가 텅텅 빈 것만 같았다.
알피노는 잠시, 제 바지춤에서 구겨진 종이를 펴 보았다. - 하논에게 주고 싶었던 하논의 초상화. 이걸 주면 하논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 가끔 머뭇거리는 그녀의 행동에 혹시 불편한 게 있을까. 더 편해지려고 그녀를 그린 초상화였는데. 이젠 너의 얼굴을 잊어버릴 것 같을때 마다 펴서 보는 그림이 되었다. 그래, 너는 이렇게 생겼었다. 환하게 미소 짓는 너의 얼굴이 아름다웠다. 나를 ‘알피’라고 부르는 것도 너가 처음,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열심히 마법을 가르친 것도 너가 처음, 친구가 생긴 것도, 너가 처음이었다.
하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야만신 바하무트를 쫓아갔는가? 너만의 진실을 향해, 쫒아갔는가.
알피노는 이내 초상화가 그려진 종이를 다시 제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걸음을 옮긴다. ‘알피노, 가자!’ 라는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린다. 하논, 나도 이제 나의 진실을 찾으러 가려고 한다. 야만신 바하무트, 그리고 나만의 ‘진실’을 향해. 나의 진실을 찾다 보면, 바하무트의 진실을 찾다보면. 언젠간 너도 만날 수 있겠지.
그 땐, ‘오랜만이야, 알피!’ 하면서, 나를 향해 환히 웃어줄까. 하논.
*
“알피노님, 조심하세요 ! ”
분명, 평소에도 잘 하지 않는 ‘옛날 생각’ 이였는데.
-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불꽃이 자신을 감싼다. 고통에 몸부림칠 새도 없이 알피노는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왜, 왜 하필 이럴 때, 너의 생각이 나 버려서. 내가 이곳에서 죽을 걸 감지했기 때문에? 눈 앞에 있는 적이, 지금 상처를 입은 자신과, 동료들의 상대도 안된다는 걸. 본능에 따라 알아챘기 때문에?.
그와중에, 주머니 속 종이가 괜찮을지. - 한켠으로 생각나는 게 참으로도 웃겼다. 하논, 난 그날 이후로. 몇 년 동안이나. 이 종이를 계속 쥐고 다녔다. 그 날 이후로 .. 그래, 오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나. 애석하게도 너는 연락 한 통도 없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지만. 이 에오르제아 어디에선가 너만의 답을 찾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나만의 답을, 조부님의 진실을, 바하무트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서 싸우고 있다. 바하무트의 진실을 알게 되면 조부님의 진실도, 너의 진실도 알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이대로 끝인 걸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하논, 네가 실력이 부족했던 시절에. 카벙클이 금방 불안정해지고, 사라졌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그렇다. 에테르가, 완전하지 않다.
아아, 그래도, 나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는데.
진실을 밝히고 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조부님 앞에 떳떳해지고 싶었다. ‘알피는 너무 고리타분하다니까. ‘ 라며 너의 고개를 저을 말이지만, 알피, 오랜만이라고. 환하게 웃는 너의 얼굴을 다시 보고싶었다. 너는, 매일매일 나를 보러 샬레이안에 왔으면서. 매일매일 오랜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땐 왜 그랬어, 이 긴 이별에 익숙해지라고. 매일매일 ‘오랜만이야, 알피’ 라고 나에게 말했는가 ? -
“…….. 피 - ”
순간이었다. 커다란 큰 폭발음과 함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것은.
- 이건 가루다의 에테르. 알피노는 고개를 들었다. 가루다다, 야만신 가루다. 하지만 묘하게 다른게, 익숙한 , 그리고 따스한. 누군가가 마치 ‘소환’ 한듯한 그런 에테르. 흐릿한 시야가 곧 또렷해지자, 자기가 매일같이 상상하며 그렸던, 또 그리워했던 그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뒷모습이 보인다.
아아, 나는 너의 뒷모습을. 그날 이후로 잊을 수가 없었다.
“………..알피, 오랜만이야!”
하논. 오랜만이야.
자기가 그토록 그리워했었던, 그녀의 환한 미소였다.
- 알피, 많이 다쳤잖아. 대체 왜 이렇게 무리한 거야. 평소에는 자신이 하논에게 잔소리를 하던 자리였는데, 하논은 급히 그에게 달려가 중얼거리며 치유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상처가 깊어 자신의 치유술론 턱도 없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다치고, 이게 뭐야! - 얼굴도 상처 때문에 못생겨졌어. 알피. 못생겼어!
“하논 … 뒤를 …. 조심해 - ”
적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 알피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논은 눈빛을 바꾸어 알피노를 공격하려 하던 적에게, 에테르 마법으로 반격했다.
이제 너는 소환도, 마법도 모두 잘 쓰는구나. 그때 괜히 알피노의 설명을 잘 알아들은 게 아니였다. 너는 재능이 있었어. 야만신 가루다도, 이프리트도, 타이탄도. 다 소환 할 줄 알게 되었구나. 내심, 그래. 기쁘다. - 기뻤다.
알피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리워하던 얼굴을 보았다. - 그러면 잠시 쉬어도 되겠지? 하논. 자신을 안고 있는 하논의 뺨에 손을 살짝, 올리며. 자신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하라고. 알피노는 그렇게 말을 마치곤, 눈을 감는다.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
에테르 학의 경지에 오른것도. 소환술에 경지에 올라 - 다시, 바하무트의 에테르를 응용한 것도.
모두 너 때문이었다. 너의 진실을 찾는 것을 돕는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알피노, 그 날 말도 없이 너를 떠난건 미안해. 하지만 너의 할아버님을, 또 나의 진실을. 너와 내가 함께 밟게 될 진실의 길을 밝히려면 - 지금의 나로선 정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날 이후로 용님께 찾아가서 고대의 소환 술을 배우고, 비술사 길드에서 열심히 의뢰하면서 나는 샬레이안을 떠났어. 내가 네 앞에 떳떳히 나타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우리의 정답을 찾아. 서로가 사는 세계를 지킬 수 있도록.
“..지금 네가 눈을 감아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논은 고개를 떨궈 알피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용서 할 수 없어, 겨우 만났는데. 나는 알피를, 겨우 이제야 만났는데 … -
하논의 등 뒤에 , 에테르 날개가 생긴다. - 이건 바하무트의 에테르.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의식을 잃지 않은 알피노는 느낄수 있었다. 순간, 어릴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건 왜일까. 바하무트는 위험한 야만신이야. 혹시라도 무리하게 빙의할 생각은 하지말게. 혹시나 정말 지키고싶은, 소중한 사람이 생긴게 아니라면 말야. 라고 자신은, 하논에게. 하논이 자신을 떠난 날. 그렇게 말했는데. 하논, 위험해. 하지 말게. - 자신을 위해 이렇게, 무리한 힘을 쓰지 말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의 ‘정답’을 해친, 너희를 용서할 수 없어.”
자신의 등 뒤로, 바하무트의 날개를 펼친 하논이. 큰 폭발을 만들며 대답했다.
알피노의 속마음에 대답한 것이기도, 자신을 무시하는 적들에게 대답한 것이기도 했다. 주변 일대를 휩쓴 큰 폭발, 하논은 이성을 잃는 그 와중에도, 알피노가 자신에게 제일 처음에 알려주었던. 에테르의 기본 마법. - 에테르 방어막을 펼쳐, 알피노가 공격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를 지켜내었다.
따듯했다. 하논의 에테르는. - 자신이 어릴때 느꼈던 하논의 에테르.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문제의 방향성을 이미 찾은 채, 정답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에테르가 불안정한 상태로 - ”
“바하무트 빙의를 하지 말라는 거지? 알겠어, 알피이 - 알피 또 잔소리해, 싫어!”
걱정이 되는걸 그러면 어떻게 하나! - 그 때 하필이면 텔레포트도 타고, 이프리트에 빙의한 채 빠르게 달려오느라. 에테르도 마나도 없던 상황이었다는데, 거기에 바하무트 소환까지 하다니. 자신을 구하는 건 좋지만, 하논 자네 몸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 끝나지 않는 알피노의 잔소리에 하논은 고개를 도리질 쳤다. 벌써 삼 일째다. 재회한 지 삼일인데, 삼 일 내내 잔소리라니 - 알피, 좀 심하지 않았어 ?!
“그뿐만이 아닐세. 거기에 바하무트 소환까지 한다니. 자네의 몸에 얼마나 무리가 - ”
“헛, 알피, 종이가 떨어졌어! ”
“딴 이야기 하지 말고, - ”
이거, 내 그림이야?
…. 잔소리를 듣기 싫어 말을 돌린 줄 알았더니, 아차. 언제 떨어진 것인지.
알피노가 보지 말게 - 라고 다급히 하논을 향해 소리쳐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하논은 구깃한, 오래된 종이를 펴 자신의 어릴 적 초상화를 보았고, 그 뒤에. 일 년마다. 알피노가 상상하며 그린 하논의 초상화가, 마냥 작지 않은 종이에 꽉 체워져 있었다.
알피노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 다음에 더 잘 그려서 줄 테니, 그건 버리게!’ 라고 , 그녀에게 말해봤지만 이미 그녀의 눈시울도 자신의 얼굴처럼 붉어진다. 하논은 종이를 반으로 예쁘게 접고, 이내 부끄러워하는 알피노를 꽉 껴안았다. 여간 감동받은게 아니라는 듯이, 우웃. 우우웃. 이라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알,피 - 알피가 제일 좋아! 고마워! 나, 나 정말로 .. 너무너무 감동했어, 알피”
“하논, 알겠으니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 - ”
“정말로, 좋아해 알피! 고마워! - ”
알피노의 얼굴은 이미 터질 듯이 붉어진 지 오래. 뒤늦게 상황 파악 못 하고 문을 연 산크레드는, 그 광경을 보더니 ‘청춘이네’ 라는 말을 내뱉곤 다시 문을 닫았더라.
오, 오해하지 말게! 라고 뒤늦게 소리쳐봤지만, 이제 무슨 상관이람. 알피노는 고개를 잠시 젓다, 하논의 손을 맞잡았다. - 정말, 다시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했던 소리라네. 하논. 다시는,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아줘. 진지한 눈빛, 알피노의 마음 어린 말에 하논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피. 이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헤어지지도 말고, 우리, 서로가 사는 세계를. 꼭 지켜내자.
그날의 하늘도 마냥 푸르렀다.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의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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